저보성
(추푸청: 褚輔成 1873~1948)

중국 동남쪽에 있는 저장성 자싱(가흥)시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 김구의 피난처 유적이 있습니다.
이곳에 김구를 피난시킨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저보성(추푸청: 褚輔成 1873~1948)입니다.

저보성은 자싱 출신의 정치가로 중국 정부의 간부이자, 상하이법과대학 총장, 항일 단체인 항일구원회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 의거 후 일제가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김구를 추적하자,
중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김구의 피난처를 저보성에게 부탁했습니다.

저보성은 김구의 피난처를 자싱 메이완제 76호에 있는 자신의 수양아들 천동셩의 집으로 정했습니다. 이 집은 호수와 연결되어 있어서 위급할 때 배를 타고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집은 호수 주변에 정교하게 지은 반양식으로, 수륜사창과 서로 마주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고, 풍경 또한 매우 아름다웠다. 당시 나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저씨 댁 부자 내외와 진동생(천동셩) 부부뿐이었다.-『백범일지』

그러나 일본 경찰의 수색이 자싱 피신처까지 좁혀왔고, 저보성은 며느리 주자루이의 친정 별장이 있는 하이옌으로 김구를 다시 피신시켰습니다.

김구는 피신을 돕는 주자루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자서전에 기록했습니다.
“우리 국가가 독립이 된다면, 우리 자손이나 동포 누가 저부인의 용감성과 친절을 흠모하고 존경치 않으리오. 활동사진은 찍어두지 못하나 문자로나마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이 글을 쓴다.-『백범일지』”

저보성은 김구뿐만 아니라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피난처도 마련했습니다.
이동녕, 이시영, 엄항섭, 김의한 등과 그 가족들이 이곳에서 생활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은 1935년까지 자싱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광복 후 함께 피신했던 김구의 아들 김신 장군은 김구의 피난처를 찾아,
한국 독립운동가를 도운 저보성과 그 가족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시며 그 근원을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저보성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자싱 김구 피난처와 자싱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거주지는 현재 한국의 독립운동을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김구 피난처 옆 건물은 저보성 사료 진열실로 조성되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함께 맞섰던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의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저보성은 진정한 ‘한국의 친구’입니다.
여러분도 저보성의 꿈을 이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지구촌을 변화시켜주세요.